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 민족 (문단 편집) === 적극적 견해 === 바다 민족을 평가하는 가설들은 이들의 존재가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 등 [[지중해]] 문명들이 갑작스럽게 쇠퇴, 멸망했던 미스터리를 밝힐 실마리라고 보며, 더 나아가 고대 유럽 문화의 단절과 [[암흑시대]]의 시작,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의 빠른 전환 등 많은 역사적 사건에 바다 민족의 침략이 얽히고 설켜 있다고 주장한다. [[철기 시대]]의 경우,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지는데다 청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제련해야 하므로 더 어렵고 손이 많이가는 기술이다. 당시 청동기는 기술이 충분히 성숙한 반면 철기[* 하투사스([[히타이트]])의 한정된 고급 철기만이 청동기와 비견할 수 있었다.]는 제련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품질 면에서는 더 조잡했으며, 녹까지 잘 슬어 보관하기도 어려웠던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 여러 국가들의 멸망으로 무역이 끊겨 청동기의 재료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청동]]은 [[구리]]와 [[주석]] 등등 여러 금속을 섞은 합금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료가 충분한 철기를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철기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미케네의 성벽과 황금 장식품이 가득한 무덤 등 찬란한 유적이 남아있으나 엄청난 인명 손실과 주요 도시들이 모두 파괴되고,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한 모습을 남겨주었다. [[스파르타]]가 위치한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거주민의 90%가 죽거나 달아나 무인 지역이 되었고, 이 무인지대를 북쪽에서 내려온 [[도리스인|도리아인]]이 차지하여 [[라케다이몬]](우리가 흔히 말하는 폴리스 시대 스파르타)을 세웠을 지경이었다. 바다 민족의 대이동이 끝난 직후, 겨우겨우 살아남은 도시의 생존자들이 도시의 폐허 위에 다시 거주지를 건설한 나라인 [[리디아]]를 포함해서 레반트 지역 등에 간간이 남아있었으나, 그마저도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에 점령되면서 사라졌다. 또한 국가 간, 도시 간의 무역도 완전히 끊어지고, 길마다 도적떼가 들끓었으므로 자연히 무역 활동도 없어졌으므로 문명을 복구하려는 노력 자체를 힘들게 만들었다. 게다가 무역로를 복구하려면 아직 바다를 지배하는 바다 민족부터 쓸어버려야 했다. 다시 해상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그리스에 폴리스가 다수 발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실 폴리스라는 도시문명이 발달하는 이유도 무역 루트가 전멸하면서 파편화된 도시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선문자 B]]를 포함한 문자 사용도 끊어져서[* 이후 그리스 문명이 재건되고 부활하면서 [[페니키아 문자]]를 차용해 그 유명한 [[그리스 문자]]가 만들어졌다.] 역사학적 의미 그대로의 진짜 '''[[암흑시대]]'''가 되었다. 남아있는 기록이란 게 [[호메로스]]의 서사시 정도 외에는 없다. 이것도 당대에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암송을 통해 '''구전'''된 것을 후대인 기원전 8세기에 호메로스가 기록한 것이다. 덕분에 [[지중해]]와 인접한 문명이 거의 궤멸 상태에 놓이면서 피해가 가장 적었던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아시리아]] 세력이 막강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한때 이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등 전 근동이 아시리아의 지배에 놓였고, 다시 독립하였으나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다시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암흑기로 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히타이트나 이집트 같은 강대국이 멸망하거나 쇠락하면서 고도의 문명을 지탱하던 사회 시스템이 붕괴했고, 그렇기에 문자를 기록하고 해독할 수 있는 엘리트/사제 계층 자체가 고대 세계에서 거의 소멸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동기 시절 동안 방대한 양의 자료를 기록하던 문자 유물들이 후기 청동기의 종말과 더불어 뚝 끊겼으며, 철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제국이 다시 사회 시스템을 회복하기까지 수백년 동안 거의 아무런 문자 유물들이 남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당시 서양인들에게 이러한 역사의 공백기는 서로마 붕괴 후 중세 초의 혼란기를 연상시켰다.[* 다만 오늘날엔 중세 전체는 물론이고 중세 '초'에 대해서도 퇴보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청동기 문명의 붕괴가 그런 통념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의미일 뿐.] [[그리스 신화]]에서, [[중국]]의 [[요순시대]]와 같이 과거로 갈 수록 문명이 발달했으나 시대가 지날 수록 야만적이고 퇴보한다는 관념을 담은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같은 [[인간의 다섯 시대]]를 묘사한 것이 문명이 붕괴하고 과거의 기록과 기술이 속절없이 대가 끊기는 종말적인 시대에서 과거의 찬란함을 추상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